야만적인 앨리스씨

그대는 어디까지 왔나.

앨리시어의 복장은 완벽하다. 재킷과 짧은 치마로 한 벌인 감색 정장을 입었고 비둘기 가슴처럼 빛깔도 감촉도 사랑스러운 스타킹을 입었고 비둘기 가슴처럼 빛깔도 감촉도 사랑스러운 스타킹을 신었다. 그대는 앨리시어가 걸을 때 정장을 단단하게 차려입은 굵은 골격이 괴상한 방향으로 솟구쳤다 가라앉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대는 앨리시어가 발을 끌며 걷는 것을 보게 될 것이고 불시에 앨리시어의 냄새를 맡게 될 것이다. 담배에 불을 붙이다가 동전을 찾으려고 주머니를 뒤지다가 숨이 들이쉬다가 거리에 떨어진 장갑을 줍다가 우산을 펼치다가 농담에 웃다가 라테를 마시다가 복권 번호를 맞춰보다가 버스정류장에서 무심코 고개를 돌리다가 앨리시어의 체취를 맡을 것이다. 그대는 얼굴을 찡그린다. 불쾌해지는 것이다. 앨리시어는 이 불쾌함이 사랑스럽다. 그대의 무방비한 점막에 앨리시어는 도꼬마리처럼 달라붙는다. 갈고리같은 작은 가시로 진하게 들러붙는다. 앨리시어는 그렇게 하려고 존재한다. 다른 이유는 없다. 추하고 더럽고 역겨워서 밀어낼수록 신나게 유쾌하게 존나게 들러붙는다. 누구도 앨리시어가 그렇게 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앞으로도 앨리시어는 그렇게 한다. 앨리시어의 체취와 앨리시어의 복장으로 누구에게도 빼앗길 수 없는 앨리시어를 추구한다. 누구의 지문指紋으로도 뭉개버릴 수 없는 앨리시어의 지문을 배양한다. 그대가 앨리시어 덕분에 불쾌하고 지루하더라도 앨리시어는 계속할 것이다. 그대의 재미와 안녕, 평안함에 앨리시어는 관심이 없다. 계속 그렇게 한다.


형.

그래서 여우 새끼는 어떻게 되냐.

그래서… 그리고… 새끼는 자라고 너는 자는 거지.

자라.

자라, 라고 앨리시어는 말한다.

그대는 어디까지 왔나. 앨리시어의 입에 빗방울이 떨어진다.

앨리시어와 그대가 사는 이 도시에도 비가 내리고 있다. 빗물은 분진이 섞여 거칠거칠하고 탁하다. 수일째 건조하게 부서져가고 있던 도심의 상공에 마침내 비가 내리고 있는 것이다. 빗물은 차가운 폭탄처럼 떨어져 마침내 도시를 채운다. 앨리시어와 구두와 스타킹과 발가락이 빗물에 잠긴다. 그대는 어디까지 왔나.

앨리시어는 꿈을 꾼다. 과거의 앨리시어와 현재의 앨리시어, 수면의 바로 위와 바로 밑처럼 순식간에 모든 순간을 오가는 그를 꿈꾼다. 여기 그 순간들이 있다. 앨리시어의 꿈 말이다. 현재의 앨리시어가 불쑥 터져나오는 과거이고 과거의 앨리시어가 창백한 싹처럼 문득 돋아나는 현재이다. 앨리시어는 지금 어디에 있나. 그는 지금 모퉁이에 서 있다. 설탕가루로 장식한 케이크와 과자가 놓인 유리진열장을 통해 그는 그의 얼굴을 본다. 타오르는 불이라곤 한 점도 볼 수 없는 이 거리에서 발생한 검댕으로 그의 얼굴은 상당히 검다. 그의 뺨, 팔뚝, 손마디의 피부가 마른 떡처럼 하얗게 굳은 채로 갈라져 있다. 그는 몇 살일까. 상당히 늙었을 것이다. 언제나 꿈꾸고 있으므로 전혀 늙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자라, 라고 그는 말한다.

고모리에 비가 내린다.

동생은 이제 잠들었다. 그의 숨소리가 들린다.


고미의 고물상에서 발견한 잡지에 실린 글이 사실이라면 갤럭시는 팽창하고 있는 것이다. 엄청난 속도로 서로간에 멀어지고 있는 것이다.

지금쯤 얼마나 멀어졌을까.

별도 뭣도 없는 갤럭시의 공간空間은 얼마만큼 불어났을까.

하여간 근사할 것이다. 거대하고 아름다울 것이다. 별과 우주가스가 모인 곳은 붉은 머리카락 다발 같고 보라색 꽃 같고 용맹한 말의 머리 같고 노랗고 파란 눈동자 같을 것이다. 지금도 부지런히 팽창하고 있을 것이다. 팽창하고 팽창해서 별들 간 간격이 엄청나게 멀어져버린 갤럭시에서 앨리시어는 한 점도 되지 않을 것이다. 한 점 먼지도 되지 않는 앨리시어의 고통 역시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그런 갤럭시는 좆같다.

앨리시어의 고통이 아무것도 아니게 될 갤럭시란 앨리시어에게도 아무것이 아니다.

자냐, 앨리시어는 어둠 속에서 동생에게 묻는다.

야 자냐.

그는 앨리시어와 다름없이 머리와 등과 배와 손가락이 부은 채로 누워 있을 것이다. 맞은 뒤라서 평소보다 발열하고 있는 몸을 이불 속에 넣고 보내는 밤이다. 얻어맞은 근육이 저려 배로 숨을 쉬지 못하고 가슴으로 쉬느라고 숨은 얕고 갑갑할 것이다. 뺨을 맞을 때 제대로 혀를 씹었다면 지금 어금니에 닿는 혀는 짜고 불편할 것이다. 어두워서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이불이 펼쳐진 자리 바깥으로는 파편들이 널려 있을 것이다. 앨리시어의 어머니가 찢고 구겨서 집어던진 책과 물건의 파편 말이다.

그런 건 아무것도 아니야, 라고 말한다면 좆같을 것이다.

갤럭시 같은 것이 나타나서 그렇게 말한다면 굉장하게 좆같을 것이다.


눈을 뜨기 직전에 무슨 소리인가를 들었다고 생각한다.

퍽, 하고 눈꺼풀이 벌어지는 소리, 뼛속의 성장판이 끓는 소리. 그 소리와도 같은 소리.

목이 마르다.